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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옛날신문

[20년전 오늘의 신문]1996년 12월 5일 한겨레中_부제 : 정상으로 돌려놔라!!

by 조음(good) 2016.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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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문. 정확히 20년전>>

1996년 12월 5일 한겨레

 

본문 옮김 : 조음

 




유혈 일족즉발 세르비아 시위사태 진단 저항 폭발적...


유혈 일족즉발 세르비아 시위사태 진단

저항 폭발적...내전끝나 억압 한계점

정부, 친야방송폐쇄'폭도'매도하며 버티기...평화해결 안개속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세르비아 정부에 대해 2주일째 대통령 하야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온 학생 및 야당 연합세력과 정부간의 대결이 더욱심각한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지난 24일 정부의 지방선거 결과 무효결정에 반발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베오그라드

시내를 메워온 5만여명의 시위대는 1일 무력진압 가능성을 내비친 정부의 위협에도

2일에 이어 3일에도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시내에서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에 앞서 세르비아 정부는 그동안 시위소식을 전하는 데 앞정섰던<라디오B92>를

폐쇄시키는 한편 국영방송을 동원해 시위대를 "폭력에 의해 정권을 탈취하려는 테러리스트"

라고 매도하는 등 선전전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앞서 1일에는 5명의 야당인사를

체포하기도 했다.


89년 코소보 자치주의 분리 독립 요구에 강경하게 맞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됐던 밀로셰비치가 직면한 이러한 정치적 곤경은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를 정당화시켜 줬던 보스니아 내전의 종결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결국 시위는 유고연합의 해체 과정과 그에 뒤이은 보스니아 내전 개입으로 91년부터

내전의 참화에 짓눌려온 세르비아 국민들의 정상생활에의 갈구를 반영하는 외침이다


대세르비아 건설을 내걸고 92년부터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해온 대가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아온 세르비아의 경제상황은 연 100%를 웃도는 높은 인플레와 경제인구의 60%를 웃도는

실업률로 인해 극도로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무기 뒷거래나 사유화 과정을통해 

사복을 취한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렸고, 이는 허기진배를 움켜쥔 국민들의 분노의 대상이 됐다 


계속되는 전쟁상태 속에서 표출되지 못한채 쌓여왔던 국민들의 이런 불만이 지난 지방의회

선거에서 18개 주요도시 가운데 15개 도시에서 야당연합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으로 

나타난셈이다


시위 지속의 또다른 배경으론 서방국가들의 문호폐쇄로 국외탈출의 길이 막혀버린

젊은이들이 탈출대신 저항을 선택한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찾아 서방으로 가는

대신 이땅에 민주주의를 구현해 살고 싶다는 한 학생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와 함께 3일 정부에 의해 폐쇄된 <라디오B92>같은 일부 독립적 언론의 존재도 무시할수 없다

92년 일부학생들과 아마추어 무선사들에 의해 세워진 이방송은 지난 10일도안 하루도 빠짐없이

시위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물리적 시위진압을 하겠다고 위협합으로써

이번 시위도 한달가량 의사당 광장을 점거하고 벌였던 92년 시위처럼 스스로 잦아들기를

바라고 있지만 현재의 시위 규모와 강도 등으로 미뤄 낙관할 수 만은 없는 형편이다.


양쪽의 대결상황이 심화될 경우 "피로 권력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이 쉽사려 권력을

뺏길수는 없다는 대통령 부인 미르야나 마르코비치의 확언처럼 유혈사태를 빚을 가능성도

배체할수 없다



파리/권태선 특파원 



 

 


 


 

평화시위 6차 촛불집회까지 이르렀습니다.

20년 그날 세르비아에서도 평화적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살고싶어하는 국민들의 외침과

민주주의를 찾아 서방으로 가는 대신 이땅에 민주주의를

구현해 살고싶다는것. 20년전의 어느나라나...우리나라 국민의마음이나

이토록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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